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르봉 왕조 (문단 편집) ===== [[나사우 가문#s-3.2|룩셈부르크나사우 왕가]] ===== [[룩셈부르크]]는 [[로베르토 1세]]의 6번째 아들인 펠릭스 공자가 [[샤를로트(룩셈부르크)|샤를로트 여대공]]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 [[장(룩셈부르크)|장 대공]]이 대공위를 이어받은 1964년부터 부르봉 왕가의 일원으로 보았으나 '''1987년 장 대공이 부르봉 왕가와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당시 보르보네파르마 가문의 수장 카를로스 우고(2010년 별세)가 장 대공들의 아들들이 평민과 결혼하자 이를 [[귀천상혼]]으로 취급하려 한 것이다. 비통치 왕가들은 오히려 지금까지도 귀천상혼을 엄격히 지키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현재 군주제를 유지하는 나라의 왕족들은 법적으로 귀천상혼을 규정하기가 쉽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분쟁일 수도. 군주제가 폐지된 나라의 왕족 후손들은 귀천상혼을 지키지 않을 경우 언젠가 [[왕정복고|군주정 복고]]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가문 전체가 왕족의 후손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일반인에 동화되기 쉽기 때문에 기를 쓰고 귀천상혼을 지키려 하는 반면 군주제가 계속 유지되는 나라의 왕족들은 현재까지도 자기네 가문이 대대로 군주를 배출하여 왕족으로서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는 상황이라 왕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분가하여 일반인에 동화되어도 자기 가문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왕위에 오르기 때문에 언젠가 [[공화정|군주제가 폐지되지]] 않는 한 왕족 전체가 남김없이 일반인에 동화되어 정체성을 잃을 걱정이 없다는 점도 한몫 하는 듯하다. 고로 현재 룩셈부르크 왕조는 1987년의 칙령에 따라 [[나사우 가문#s-3.2|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이 공식 명칭이다. 이 때 왕족들은 원래 대공가에서 가지고 있던 'Grand Ducal Highness' 칭호가 아니라 부르봉파름 가문의 후손 자격으로 가지게 된, 즉 'Royal Highness' 칭호는 계속 유지했다.[* 원래 룩셈부르크와 같은 대공국에선 대공 부부와 대공세자 부부만 Royal Highness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Grand Ducal Highness를 사용한다. 그러나 부르봉파름 가문은 프랑스와 스페인 왕가의 방계이기에 왕족임을 나타내는 Royal Highness를 가문 구성원이 모두 사용할 수 있게된 것이다.] 이런 사연으로 장 대공과 아들인 앙리 대공, 그리고 귀천상혼 논란의 주인공인 장 왕자는 부르봉파름 공자(Prënz vu Bourbon-Parma)의 칭호와 계승권을 포기했다. 그러나 1995년에 부르봉파름 가문과 화해하면서 다른 아들들과 손자들부터는 다시 정상적으로 부르봉파름 공자의 칭호를 사용하고 계승권도 가진다. 다만 1987년에 정해진 바와 같이 룩셈부르크의 왕조명은 그대로 유지하는 식으로 정리했다.[* 현재 룩셈부르크 대공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명칭은 룩셈부르크[[나사우 가문]]이다. 일부에선 제2차 나사우 가문이나 부르봉룩셈부르크 가문으로 부르기도 한다.] 사실 룩셈부르크 대공가의 부르봉파름 가문 계승서열이 직계에 이어 바로 4위에다가[* 2위인 하이메 공은 딸만 둘이고 3위인 식스토 엔리케 공은 1940년생에 미혼이라 실질적으로는 2위나 다름없다. 그 마저도 현 수장인 카를로스 하비에르가 딸 둘 뒤에 아들(2016년생)을 얻고 나서야 한 계단씩 밀린 것.] 룩셈부르크 대공가의 남계후손만 20명인데 전체 부르봉파름 가문 남성 계승권자 32명 중 거의 2/3나 되기 때문에 이들이 전부 계승권을 포기해버리면 부르봉파름 가문에 계승권자들이 남아나질 않는다. 가문의 수장 계보(펠릭스 공자 이후 직계) : [[장(룩셈부르크)|장 대공]] → [[앙리(룩셈부르크)|앙리 대공]]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